Point of View of Myself as a Child
Point of View of Myself as a Child
한 친구는 말했다.
"어린날의 내가 바란 미래의 나는 이런 모습이 아닌데, 포기하고 주저앉은 모습이 아닐텐데.. 생각이 들면 다시 힘낼 수 밖에 없는 간단하고도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어린날의 나.
어린날의 나를 조우하여 그 어리숙하지만 성숙해지려 애쓰던 마음을
보듬어주어야 겠다, 따뜻하게 감싸야겠다 다짐했지만
어릴적 나는 커녕 지금의 나조차 안아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연유가 생겨 돌아보는 나의 어린 시절.
그 때부터 눈치와 불안을 배우던 아이.
그 때는 보다 더 소심하고 조용했던 아이.
그 때마저 외로움과 속절없음을 경험하던 아이.
그 때는 미처 기대도 예상도 못하던 어른이 된 지금의 내 모습.
하지만 그 삶의 구덩이에서
사람들의 손길에 몸을 맡기는 법을 배웠고
절망과 불안과 좌절과 공포와 불신 속에서 어떻게든 남아있는 희망을 찾았다.
사람에게 데이고 실망하고 버림받았지만
사람 덕분에 다시 웃음을 되찾았고 밝은 아이로 자랐다.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트라우마도 생겼지만
이내 나를 위한 사람들의 위로와 대변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지금의 나로 자라났다.
사람을 증오하고 회피하기보다
차라리 가시에 찔려가며 사람들을 안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생을 비관하며 자살을 생각하기보다
차라리 몇 시간 몇 날을 눈물로 설움을 내보내며 기어이 밝은 것을 보는 사람으로.
내가 할 수 없음을 입증하며 살기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좁은 길을 마다하지 않는 도전과 열정의 사람으로.
나만 생각하고 남을 탓하기보다
차라리 나를 책망하고 괴로움에 엎치락 뒤치락하며 결국 일말의 성장을 일구는 사람으로.
불평 불만에 불신과 불편함의 그늘을 달고 살기보다
자그마하고 어리석은 것에 빵 터질 줄 알고 쉽게 감동하고 감사하는 사람으로.
그래서 어린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를 보고 아마 놀랄지도.
울음을 터트리고 내게 안길지도.
내게 위로의 말을 간절히 바랄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 자신이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
생각보다.. 내가 무얼 해야 할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무얼 했는지 무얼 할거라고 믿을지만 떠오른다.
'좀 더 성실하게 살아봐요'
'아픔은 그만 떨쳐버리고 현재에 집중해봐요'
'사람을 쉽게 믿지 말고 자기 자신을 먼저 믿어봐요'
'실패할까 두려워말고 최선을 다해 불 사지르면 후회 없을 거에요'
이런 것 말고...
'대견해요. 대단해요. 기특해요.
놀라워요. 자랑스러워요.
어른이 될 때 까지, 어른이 되어서도 힘든 일이 많았을텐데
어떻게 잘 이겨냈네요.
버텨줘서 고마워요.'
그런 말들만 눈을 마주치며 건네지 않을까.
내가 줄곧 '~해야만 해'라고 스스로 되뇌이던 목소리는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진정 나 자신이 창조한 목소리는 아닐 듯 하다.
어린시절의 나와 대면하여
그 시절의 마음을 알아냈으니
이제는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애잔함과 뿌듯함을 더 기억하고 살아가자.
나는 이미 어릴 적 내가 상상할 수 없었을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까 조금 퇴보하고 뒤쳐지고 느리게 자라나도 괜찮다.
이미 살아 내 왔고 살아 낼 것을 다짐하며 살고 있으니
나는 이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러니 아플 때는 그냥 아파버리고
속이 상할 때는 맘껏 먹기도 하며
그러나 때와 시를 살펴 내가 원하는 것을 하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을 하고
충동적인 재미를 보고
잠시 우쭐해 보기도 하고
어이없는 것에 웃음도 호탕히 터뜨리고
흐릿한 것에 나의 온 맘과 정성과 열정을 쏟아도 보자.
그런 삶이 지금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10년 20년 30년 후의 중년의 모습으로 인도할 거니까.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