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place and My dear you.
나의 공간과 나의 그대
오늘이 몇 일 몇 요일인지 까먹는 시기가 온다.
딱히 관심 있게 들여다보지 않는 달력과
그닥 아쉬울 것이 없이 흘러가는 시계로
그저 그런 날들이 속절없이 뒤엉켜 떠내려가는 시기이다.
열흘에 하루는 눈물로 마음이 찌드는 날이 있고
열흘에 사흘은 무얼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 날이 있고
열흘에 나흘은 맛있게 먹은 음식이나 웃고 떠든 사람 하나 생각나는 날이고
그 나머지는 나를 찾아온 공허와 우울감에 마음을 내어준 날이다.
그래도 나의 기를 조금 살려주는 일들이 있었다면
그건 나의 새로운, 혹은 최초의 제대로 된 방.
적당히 널찍한 침대와 책상.
새 것 티가 나는 이불과 배게.
책에 과소비하고 싶게 하는 키 큰 책장들.
산뜻한 마음으로 단 커튼과 걸 옷가지들.
아직은 오랜만에 혼자 자느라
사납거나 깨기 아쉬운 꿈을 꾸며
뒤틀어진 것만 같은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나지만
그마저 좋은 건 부인 못 할 사실이다.
나의 공간이 생겼다는 건 큰 의미이다.
이제는 쓰지 않는 계획표나
쓰고 싶은 마음이 없는 다이어리나
단장하고 놀러 나갈 곳 없는 작은 동네에 있어도
여기 이 조그만 각진 방 안에
나만의 선곡으로 왕왕 울리는 스피커와
과거의 향수든 미래의 성곽이든 어딘가로 몰입하게 해주는 책만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게 되는 요상한 마법이 일어난다.
그리도 잊기 위해 용쓰다가
애타고 부서지고 갈겨 찢기고 또 지독하게 펄떡이던 마음은 한때가 되었다.
이제는 이제서야 잊지 않으려 내려놓은 마음이
애틋하고 보람차고 개운히 씻기고 또 은은하게 쿵쾅대는 심장으로 여기 머물고 있다.
기억하는 게 무엇이 잘못이라고.
그저 자연히 어느 순간 퍼뜩 떠오를 때 마다
고이 접어놓은 사랑하는 이의 손 떼 묻은 편지처럼
읽고 또 읽고 아는데 또 다 알지 못하는 마음을 계속해서 누리는 것이다.
이 방 안에서는 나의 감정이 들킬 일이 없기 때문에
당신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는 날 것들도
또 스스로도 이해 못 하는 미완성의 바람들도
여기서는 그저 결론짓고 완전하지 않은 채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굳이 설명하고 하소연하고 스스로 위안하고 변호할 필요가 없는
나만의 공간.
나만의 안식처였던 당신은 나와 함께 이 자리에 누워있지 않지만
또 당신 덕분에 어느새 맺히던 드물고 특이한 웃음결과 평온함이
내 얼굴에는 더이상 설여있지 않지만
당신의 지난 얼굴에 그려진 생기와 설렘과 오묘한 사랑을
여전히 두고두고 또 보고 있으면
마치 당신의 얼굴이 내 얼굴인 것 마냥 그때의 행복이 어렴풋이 돌아온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만족하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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