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겁
까무러치게 겁이 날 때가 있다.
호흡은 간신히 내뱉다가
미간은 펴질 줄을 모르고
연거푸 눈물을 흘려대며
힘겹게 뛰는 심장을 듣는다.
겁이 난다.
너무 두려우리만치 아름다운 기억이
나를 집어 삼키더니
고독한 어느 깊은 구덩이로 나를 낙하시킨다.
단순했던 것들은 머리 아플 만큼 힘겨운 난제를 안겨주고
순진하게 따르려 한 감정들은
비슷함에서 삼키기 어려운 기억을 가져오고
결국 전혀 다르다는 것에서 낯익은 좌절을 맛보게 한다.
너는 무엇이 그렇게 겁났을까?
나는 또 무엇이 아직도 겁날까.
이제는 정말 빼앗긴 것이 아닌 놓아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새로 써 내려가야 할 터인데
나는 이 지긋지긋한 설움이, 적응할 수 없는 애환이
내 온 생각과 마음을 현재로부터 가로챈다.
무지하게 겁이 난다.
이러다 영영.
이러진 않을까?
지금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위로인 듯 교훈인 듯 혹은 선물인 듯
끊임없이 나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과 상황을 데려와준다.
나는 좋다고 감사히 누릴 땐 언제고
막연하고 막막한 무능력함에 사로잡힌다.
나에게 다시 크디큰마음과 사려를 품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나의 큰 것보다 거대한 것을 넘치게 해낼 수 있는 이를 통해
서로가 서로의 영역이 되어 성장과 성숙을 함께 실연하는 아름다움을
해낼 수 있을까?
인생 최고의 맛이던 아이스크림을
더운 여름날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에
아이스크림이 목을 타고 녹아내려갈 찰나
아무 연유 없이, 혹은 마치 예정되었다는 듯이
내 손에서 아이스크림을 가로채 뺏어가 영영 돌려주지 않는 그런 때의 서러움.
그런 설움은 더 이상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만.
이 설움의 경험으로 인해 어쩌면 색다른 달콤함이나 더 나은 황홀경을 주는 아이스크림도
내가 마다하고 있거나 손에 들고 주변을 살피며 쩔쩔매다 흘러내려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겁에 사로잡힐 때면 나는 순간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 것만 같다.
지난 것들의 소리와 향과 웃음과 울음과 날씨와 생각과 사랑
그리고 결국 마주하지 못한 우리네들의 꿈과 희망과 약속과 삶.
지금 숨을 쉬고 글을 쓰고 울음을 삼켜내는 나는 옅어진 호흡과 함께 사라지고
애써 저기 한 편에 밀어두고 일부분만이 또렷이 기억하고 아껴두던 마음은 살아진다.
혼란하다.
너는 이미 용기를 내었겠지.
그것이 나를 더 겁나게 한다는 것.
나다운 용기를 되찾아 줄 이를 기다린다.
마음껏 왁자지껄 웃고 울고
요상하고 지저분한 장난을 치고
죽기 살기로 사랑하고 미래를 기약하고
계획 없이 걱정 없이 아무 말 없이 함께 있는 것이
전부였고 충분했고 행복이던 그런 젊은 날의 용기를 되찾도록.
여기 이렇게 알게 모르게 겁에 휘둘려 바르르 떠는 나를 알아주시기를.
이런 내가 겁이 나신다면
나는 이해하고 그대의 겁을 놓아주겠지요.
이런 저와 연이 닿으신다면
나는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그대 곁을 지키며 지금은 상상할 수 없던 미래를 그려나가겠지요.
또 상상할 수 없는 용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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