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ath of Ivan Ilyich: The Way to Taste the Joy of Death while Breathing
<이반 일리치의 죽음(Leo Nikolayevich Tolstoi)>
- 숨 쉬는 동안 죽음이 주는 기쁨을 맛보는 법
written in the winter of 2020
“공무를 수행하며 느끼는 기쁨은 자존심이 충족되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고,
사교생활을 하며 느끼는 기쁨은 허영심이 충족되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다.”
이반 일리치,
그에게는 남들과 같이 주어진 시간이 있고, 가정이 있고,
잠재력을 펼칠 직장이 있었지만
그가 느낄 수 있는 최선의 기쁨은
일을 통해 자존심이 충족되는 것,
사람들 사이에서 충족되는 허영심 뿐 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예고는 없었으나 운명처럼 다가온 죽음의 과정에서
그가 느낄 수 있는 최상의 기쁨을 죽는 그 순간, 얻게 된다.
그 기쁨은 내가 내뱉은 말들, 저지른 행위들, 남발해온 선택들을 되짚어보며
지나온 생각의 여정들 가운데
나의 부족함과 무능함을 고개 숙여 잠잠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용납하는 순간 나를 부인할 용기가 생기며
나에게 몰두함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까지 나의 전부로 받아들이는 사려가 깊어진다.
그리고 그 사려의 깊은 곳에는
온갖 미안함, 애잔함, 애통함이 맺혀
빛으로 빛나게 된다.
죽음이 두려웠던 자리에 죽음의 종식이 있는 곳,
그 곳은 죽음의 끝, 그 찰나이다.
죽어가는 우리에게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주는 것은
긴장을 풀고 숨을 거두는 바로 그 죽음의 순간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
나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은 내 육신의 멈춤이 아니라
나와 타자를 옥죄었던 자아의 죽음이다.
자아의 죽음에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와 빛이 있다면
살아 생전 그 기쁨을 누리지 않으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물론 우리들의 죽음의 찰나가
당장일지 내일일지 수십년 후 일지는 모르는 법이지만,
많은 이들이 죽음으로써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었던
그 안식과 자유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아의 죽음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아의 죽음이 비록 고되고 끝없는 과정일 지라도
내 안에 피어나는 온갖 시기와 질투, 교만과 욕심을
들춰내고, 또 도려내어
그 빈자리에 참회, 겸손, 사랑으로 채워 넣으면
살아있는 동안 자아의 죽음이 주는 기쁨을 맛본다.
죽음의 순간 까지도 자아가 죽지 않는 이들도 얼마나 많을까.
그러므로 나와 너는 행복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매일의 순간에.
자아를 도려내고 그 자리에 선하고 빛나는 것을 채워 넣을 기회가
얼마나 많고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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