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Querencia
- 나의 케렌시아
written in the fall of 2021
낮은 곳에 있는 아담한 숲,
마른 잎이 수북이 쌓여 있는 곳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금세 독특한 순간에 빠져들었다.
신비한 정취를 주는 곳에서 특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보통은 사람들의 기대와 시선, 스스로를 향한 바람과 꾸중에 둘러싸여 있었다면,
이날은 그저 곧고 높게 뻗은 대나무 숲에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사방은 조용했지만 마음은 시끄러웠다.
마음 안팎이 모두 조용해지는 날까지 찾아와 대나무를 닮아가고 싶다.
1시간에 4cm가 자랄 정도로 빨리 성장하는,
강철과 같이 강한,
부서지지 않고도 굽힐 수 있는,
무엇보다 꽃을 피며 생을 마감하는
그 삶을 말이다.
전날 밤 일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길고 긴 밤이었다.
내 삶에 이슈가 되는 고비들은 결국 이 질문으로 나를 몰고 간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용납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나의 감정이 두려움, 서운함, 슬픔, 불안함 등으로 솟아오르면
어느새 ‘나는 역시나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내가 자초한 오해로 가슴이 소란스러워진다.
크나큰 바위같이 가슴팍에 내려앉은 감정들은 곧 차가운 표정, 삐딱한 말투,
겨자씨만큼 작아진 속내로 변해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버거운 짐을 지운다.
얼마나 속이 상했고 힘이 들었는지, 그 말 한마디 건네는 법은 잊어버린다.
결국 겉보기에는 그저 매몰차고 화가 잔뜩 난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으로 비칠 뿐,
나에게 돌아오는 날 선 반응으로 도리어 나는 상처를
더욱 입고서 후회와 자책으로 마무리가 된다.
이 날 만큼은 대나무 언저리에 앉아 있으니 서러운 마음은 저리 가고
바람을 타고 전해진 대나무의 향기가 온몸과 마음을 지배했다.
하지만 나무가 사방으로 빽빽하고 새들은 여기저기서 지저귀는 만큼
내 안에는 걱정이 빼곡하고 근심이 조잘대는 듯했다.
보통 나는 타인의 감정을 예민하게 알아채고 그 아픔은 가슴 저리게 공감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정을 재빨리 내어주면서도 금세 사람으로 인해 움츠러든다.
어떠한 연유로든 마음이 연약해질 때면
내가 내뱉고 선포해온 말들과 실제 살아내는 삶 사이의 괴리가 나를 더욱 부정적인 생각들로 몰고 간다.
‘네 삶이, 마음이 이러할 땐 어떠해야 해.’
건넸던 작은 위로와 조언들.
하지만 삶으로 온전히 살아내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전해진 문장들은
결국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위선자의 표징이 되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내 삶에는 말에도, 행동에도, 감정의 소화에도 느린 템포가 필요하다.
상처도 빨리 받고, 해야 할 일들에 조급해지고,
판단과 염려에 신속했던, 지나온 발자국들은 흩어버리는 삶은 등지자.
힘과 악을 빼내어 나를 돌보는 여유를 갖고,
상대방의 감정도 나의 것도 귀하게 여기는,
지나온 삶의 자취들이 나의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볼 줄도 아는 고독을 갖자.
한편 사람의 손이 닿는 곳에 위치한 여러 대나무에 새겨진 낙서 자국이 보였다.
대나무의 허락도 없이,
대나무 마음은 하나도 모른 채 아름다운 표면에 상처를 입히고
아마 인증샷까지 찍어 갔을 사람들을 상상하며 분을 냈다.
그러다 문득 나의 모습이 낙서 입혀진 대나무 같았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씻지 못할 상처들이 점차 각인되어
조금이라도 버거운 상황이 닥치면
뿌리 깊은 상처가 나의 말과 행동으로 훤히 드러나게 되는 게 꼭 닮아 있었다.
하지만 대나무는 남들에게 대놓고 드러나는 상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올곧게 솟아올라 단단하고 유연한 대나무로 살아가며,
대나무의 곁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위안을 준다.
지저분하게 상처를 입었다고 못난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알아봐 주는 이들에게 공감을 받을 뿐,
상처는 대수가 아니었다.
대나무가 태어난 목적처럼 그저 바르게 서서 흔들리는 바람에 맞춰
조금씩 하느작거리고 뿌리는 강건히 지키며 살다가,
어느새
꽃을 피우고서 여운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다.
난 대나무 옆에 겹겹이 쌓인 마른 대나무 잎과 같은 마음을 지니고 살아왔나 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냐 반문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내 이름값은 하고 싶다.
강해지고 싶다.
나 같은 사람도 결국에는 단단하고 유연한 사람이 되었다고
나와 같은 길을 걸을 사람에게, 특히 가슴이 식어버린 청소년들에게
내 말보다는 삶으로 위안을 주고 싶다.
대나무 숲에는 바람이 일면 잔잔한 파도 소리가 난다.
내 마음에도 풍랑이 일면 그윽한 목소리가 모든 걸 잠재우기를.
비가 쏟아지고 거센 바람이 몰아치면 담대한 위로의 결이 담긴,
우렁차지만 넘실거리는 목소리로 외쳐야겠다.
그래도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나는 마음이 따뜻하고 또 뜨거운 사람이며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라고, 토닥여야겠다.
이제 내 삶이 버거울 때 스스로 외쳤던 소리들을 아이들의 가슴에도 심어
삶의 여러 훼방꾼들로부터 아이들도 자유해질 수 있도록 해방 운동가의 사명을 새로이 품어야겠다.
영화 <Freedom Writers>에서 한 학생은
“교실에 들어오니 ... 내가 가진 모든 문제가 별거 아니라는 느낌,
집에 온 기분이었다.”라고 일기에 기록했다.
나의 교실이 모든 학생들에게 문턱이 낮은 케렌시아가 되어,
자그마하지만 위대한 변화로 이끄는 안식처로 기억되길 기도한다.
또다시 어두운 감정이 나를 삼키는 순간이 와도
나는 낙서 입은 대나무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하고 올곧게 자라는 과정에 놓인 것일 뿐,
뿌리는 결코 뽑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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