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ad Map of the Steps in the Past, Present, and Future
A Road Map of the Steps in the Past, Present, and Future
A report for the creative thinking course,
written in the winter of 2021
생각이 많은 사람에겐 어떤 단점이 있을까요? 첫째, 실행력이 부족하면 공상에만 갇히게 됩니다. 둘째,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이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셋째, 경험을 통한 시행착오가 중요한데 생각을 통한 걱정이 앞서 도전 앞에 머뭇거릴 수 있습니다. 남이 보든, 스스로 보든 생각이 많은 사람으로서 지난 삶을 돌아보면 생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실행력이 좋았고 그로 인한 도전적인 경험도 꾸준히 쌓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여행자의 마음가짐처럼 여유 있고 소망적이지 못했고, 실수하고 실패하며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부정적인 생각의 바다에 잠겼다 나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이젠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주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조금은 더 현실적이고 고단한 삶을 감당해야 할 때를 앞두고 있습니다. 장기적 여정을 앞두고 생각이 많은 성향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부정적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습관을 바로잡으려 합니다. 그를 위해선 대학생활 6년 동안 감사함으로 경험한 바들을 돌아보고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진솔하게 마주하며 인정할 건 인정하고, 버릴 건 버리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그 시간이 이 글쓰기 과정이며 온갖 상상력과 염려로 뒤덮여 쌓인 생각 더미를 이곳에 정돈하려 합니다. 3달, 1년, 7년, 15년 후 언제가 되었든지 간에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스스로 써 내려간 문장들이 제게 되뇌는 응원이자 조언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난여름 덴마크의 국제 대안학교 International People’s College에서 반 년의 시간 동안 덴마크의 Folk High School에 대해 경험하고 왔습니다. 논문(박정우 교수님)에 따르면, 덴마크의 Folk High School은 평민을 위한 교육 운동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교육자이자 정치가인 그룬트비 목사가 덴마크 교육 철학의 토대를 세우며 시작된 학교 체계입니다. Folk High School은 삶을 위한 교육으로 대화를 통한 배움을 강조하며 “만약 학교가 진정으로 삶에 이로운 교육기관이 되려면 학교는 교육도, 학교 자체도 그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오로지 삶만이 그 필요조건이 되어야 한다. (그룬트비)”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그룬트비 교육 사상에 의하면 학교는 현대사회에 맞게 새롭게 변화해야 하며, 학생들이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선 공동체가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학교는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인재들을 키워내는 곳, 더 높은 내신 성적을 내고 수능을 준비해서 명문 대학을 가도록 훈련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오히려 학교에서 정해진 규율과 기준에 맞춰 살다가 자아를 상실하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한국 학생들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또한 한국의 교육 체계에선 교과과목 중심으로 진행되어 교사의 수업 재량권은 적고 개개인의 재능과 적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형편이라 내신과 수능이라는 양대 산맥을 위해 실적을 내야 하는 상황을 보면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학교는 아직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 같습니다.
반면에 IPC에서는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생소하기까지 한 특징들을 담고 있습니다. 시험이 없고, 학교에서 함께 사는, 전 세계 사람들이 18세 이상이면 모일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학생의 의견을 자치적으로 모아 수업, 문화 축제, 식단 등의 많은 부분을 바꿔 나갈 수 있는 곳 말입니다. 학생들에게 교사들이 삶에서 긴 시간 동안 애정을 가지고 깊이 탐구한 것을 열정적으로 나눠주는 것이 바로 수업입니다. 그래서 수업의 내용에는 교사의 삶이 들어가 있고, 교사의 시행착오에 따라 수업의 질이 달라집니다. 수업 시간에 한정되지 않고 배움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곳. 이 학교에서 교사의 중요한 역할은 학생들과 수업 안팎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신이 받은 영감과 깨달음을 전하며 학생의 해석이 묻어나는 새로운 배움을 재창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정해진 진도를 수업 시간 내에 반드시 끝내야 하는, 학생이 알고 생각하는 것보다 교사의 것이 더 드러나는, 학업 능력이 그 어떤 재능보다 우선시되는, 시험 점수가 학습의 동기가 되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IPC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은 “Heterodox Art and Storytelling” 이었습니다. 이 수업에서 음악, 패션, 시
등의 주제를 가지고 자신의 삶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 국적, 다양한 나이대의 학생들 앞에서 제 삶에서 겪은 고난, 이겨냈던 과정, 감사한 것들, 깨닫고 배운 점들을 주제별로 나누며 서로 앞에서 진솔한
나눔을 가졌던 순간은 잊을 수 없습니다. 사실 학교에서 파티하고 술 마시며 ‘casual relationship’을 갖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껴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수업을 통해 ‘삶에서 힘들었던 순간들에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들’이라는 주제로 전교생 앞에서 발표하고, 또 기립박수를
받았던 때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발표 후엔 여러 친구들이 저를 보고 안아주었고, 한 친구는 학기를 마치고 편지에 “너는 몰랐겠지만 너를 통해 배우고
감동한 사람들이 많았어. 네가 가진 꿈을 너는 이미 이뤘고, 네
나라에서도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거야. 지칠 대로 지친 IPC의
학생들이 네 발표에 집중하고 기립 손뼉을 치게 만들었으니까.”라고 마음을 전해주어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에서
다양하고 참신한 수업을 들으며 ‘나도 나중에 학생들과 이런 시간을 가져 봐야지’ 다짐하고 기대하곤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수업에서는 지필 평가
없이 학생들의 발표와 참여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과연 한국의 교실에서 실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 시행되는 고교 학점제에서 제가 원하는 수업 내용과 형식을 실제로 어느 정도 구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라 믿고, 공립 대안학교에서나 학생 동아리를 통해서 차별성 있는 수업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영어는 가르치고 배울 때 어떠한 정보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서 영어 학습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의 범위가 넓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과외에서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설문조사를 실시해
학생이 흥미로워 하는 주제와 수업 방식을 알아내 팝송, 영시, 유튜브
영상을 토대로 영어를 가르치곤 합니다. 그래서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좀 더 의미 있는 내용이 담긴 콘텐츠로
영어를 배울 수 있어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새로운 관점을 얻기에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영어 학습에 콘텐츠를 담는다면 영어 수업을 통해 자기 자신, 타인,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배우고 그 안목을 기르는 귀한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교 학점제 개설과목이나 방과 후 동아리 활동을 중심으로 학생들과 삶을 나누고 세상을 배워 나가는 영어
학습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준비하려 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러한 수업을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꾸준히 하려면 무엇보다 그에 대한 동기와 마음가짐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영화
<Freedom Writers>의 교사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영화 <Free Writer’s Diary>에선 인종 간 차별과 폭력, 가난에
휩싸여 삶에서 온정과 의지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새로 부임한 교사를 만나 서로의 삶에 변화를 자아내는 교실의 이야기입니다. 보면서 눈물도 흘리고 가슴 저린 문장들도 만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왜 항상 교실의 변화는 교사에게 전적으로 달려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는 교사가 수업을 위해 필요로 하는 자원 등을 위해 고위 공직자들의
허락을 받으려 하지만 매번 실패합니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투자를 해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기존의 시스템의 틀을 벗어나는 선택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사는 백화점에서 속옷을 파는 일까지 하며 돈을 모아 아이들에게 새 책을 사주고, 유대인 박물관에 데려갑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교실이라는 공간을 안식처로 삼게 되고,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킬 만한 힘과 세상을 향한 선한 영향력을 키워 나갑니다. 하지만, 그저 교육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대로, 적당히 가르치는 교사와 함께
한다면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요? 이런 현실이 불만스럽고 답답하긴 하지만, 교사로서 ‘지금, 여기’의 고군분투가 학생의 ‘현재와 미래’에
변화를 자아낼 수 있다면, 그만큼 마땅하고 충분한 동기는 없겠죠.
사실 영화 속 교육의 현실처럼 한국에도 어른의 속된 판단으로 이미 미래가 단정되어 버려 뒤처지고 판단 받는다는 느낌 속에서 관심과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한국 내의 청소년 자살률, 가출 청소년의 현실, 학교 부적응자, 학교 밖 청소년들을 보면 알 수 있죠. 아이들 내면에 숨겨진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 교육의 존재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단순히 숫자에 따라 가려내고 평가하는 경쟁문화 속에서 학생들은 숨을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높은 성적을 내는 아이들은 성과에 조바심을 내게 되고,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낙인이 찍히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평범한 아이들은 자신만의 목표를 찾고 이루어가는 것에 자신감을 잃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몇 년 전부터 공교육에 대안이 되는 대안교육에 흥미를 갖고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공립형 대안학교의 자리(여승욱)>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공립 11개, 사립 28개 대안학교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사립 대안학교의 어려움으로는 학교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재정 문제, 그리고 그로 인한 교사의 낮은 급여나 교육 활동 공간 확보 위한 재원
마련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한 교사의 헌신과 학부모의 희생이 대안학교의 발판이 되며 재정적 자립을
얻기 위해 학비를 받다 보니 중산층에만 열려 있는 귀족학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공립형 대안학교의
경우에는 교육 체제에 어느 정도 동조하며 대안적인 교육을 실현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한
공립 대안학교 교사는 대부분 일반학교 근무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판이하게 다른 대안학교의 문화를 극복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공립 대안학교에 재학하는 학생들은 제도권 안의 학교에서 심리적, 정서적인
상처를 입은 학생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안학교의 공통적인 어려움으로는 근무 여건의 열악함, 교사 개인에게 과도하게 분담되는 업무, 교과 지도 방안 마련에 드는
노력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조사와 더불어 여러 방면으로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교사로서 가치관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지난
걸음들을 돌아보면 2018년 1년의 휴학 기간 동안 Teach for Korea에서 소외계층 청소년들을 가르쳤고, 꿈드림에서
학교 밖 청소년을 만났으며, 작년 가을에는 두레학교와 오디세이 학교에서 비공식적인 교생실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덴마크 IPC에서의 시간 이후, 최종적으로 이 과정을 통한 경험적 자원들을 바탕으로 졸업을 앞둔 이번 학기는 최종적인 교사로서의 첫 무대를
정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립과 공립 대안학교의 차이점을 살펴보며 사립 대안학교가 가진 경제적
문턱이 맘에 많이 걸렸습니다. 이제까지 소외되고 상처 입은 아이들을 많이 만나오며 친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설움을 공감해 주며 자그마한 치유의 순간들을 경험했던 걸 잊을 수 없기에 결국 공립형 대안학교 교사를 목표로 삼기로 결정했습니다. 어쩌면 제 삶에서 이유를 모른 채 버텼던 청소년기의 고난과 고민들이 저를 상처입은 학생들과 함께 할 때에 상
처입은 치유자로서 가장 빛을 발할 수 있게 해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뚜렷한 방향을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도통 삶에 의욕이 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최근 2주 동안 관계적인 문제와 더불어 고질적으로 자리 잡던
내면의 연약함이 함께 폭발하여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계획적으로 공부하고 교사로서의
뚜렷한 비전을 상기하며 고단함을 이겨냈던 이전과 달리, 요즘에는 어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외로움과
공허감만 가득했습니다. 어느 때는 사람을 증오했다가, 자책과
자괴감에 사로잡혔다가, 극심한 불안감에 ‘어떡하지...’를 연발하며 통곡했다가. ‘왜 나는 별거 아닌 일에 이렇게 무너지는
걸까’, 한심해 하며 검색창에 우울증 검사를 검색하며 자가 우울증 진단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마음을 안고 비전에 대해서 고찰하고 임용 준비를 앞두고 있자 하니 참으로 고문이 따로 없었습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이렇게 내 몸과 마음을 흔들어 놓는 사람과 사건이 많을 텐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주저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지만, 그렇게 조바심을 가지고 회복을 재촉할수록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과 몇 주 전에 썼던 케렌시아 성찰 일지를 읽었습니다.
‘하지만 대나무는 남들에게 대놓고 드러나는 상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올곧게 솟아올라 단단하고 유연한
대나무로 살아가며, 대나무의 곁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위안을 준다. 지저분하게
상처를 입었다고 못난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알아봐 주는 이들에게 공감을 받을 뿐, 상처는
대수가 아니었다.’
‘나 같은 사람도 결국에는 단단하고 유연한 사람이 되었다고 나와 같은 길을 걸을 사람에게, 특히 가슴이 식어버린 청소년들에게 내 말보다는 삶으로 위안을 주고 싶다. ...
내 마음에도 풍랑이 일면 그윽한 목소리가 모든 걸 잠재우기를. ... 그래도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나는 마음이 따뜻하고 또 뜨거운 사람이며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라고, 토닥여야겠다.’
‘또다시 어두운 감정이 나를 삼키는 순간이 와도 나는 낙서 입은 대나무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하고 올곧게 자라는 과정에 놓인 것일 뿐, 뿌리는
결코 뽑히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알 고 싶어 한들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고독했고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제 안에 있었습니다.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보면 금세 보이는 위안과 조언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스스로 일궈낸 위로의 문장들을 부정할 수 없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서러움과 고마움이 밀려왔습니다. ‘나 자신에게 고마워하던 적이 있던가?’... 그리고 느꼈습니다. 교사는 학생에게 때마다 겪는 시행착오에
어떻게 하라고 답을 안겨주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돕는 존재라고. 사랑을 갖고 질문하고, 기다리고,
일으켜 주고 이끌어 주는 사람이라는걸. 담임교사로서 기껏해야 1년 동안 만날 학생들이 교사에게 의존하는 게 아니라 학생의 삶 전반에 일구어 갈 내면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 교사가
할 수 있는 최선과 최고의 역할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영화 속 교사도 학생들 저마다 각양각색으로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떨쳐버릴 해답을 제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일기장에 꾹꾹 눌러 담은 설움과
억울함을 있는 그대로 공감하고, 그들이 미처 바라보지 못한 그들에게 ‘이미’ 존재하는 힘과 능력을 발견하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내면에 숨겨진 가치를 발견하고, 더 풍성히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교사가 되기 위해선 먼저
스스로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때로는 나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담대하게 나아가는 나의 영혼이 참 아름다워.’ ‘나의 이야기는 지금이
마지막 챕터가 아닐 테니, 지금은 이야기가 조금 어그러지더라도 앞으로의 챕터 속에서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새로운 마음가짐을 통해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이 펼쳐질 거야.’ 내게 버거운 순간이 닥쳐올 때면 조급해지지 않고 내가 회복해가는 시간을 기다려
줄 것을 다짐합니다. 그래야 시행착오를 겪는 아이들을 기다려줄 수 있을 테니까. 자꾸 내 안에 모질고 모난 부분만 들여다보고 낙담하지 말 것을 마음에 새깁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좋은 모습까지 발견해 용기를 심어줄 수 있을 테니까. 저의
몸과 마음을 해하는 언행심사는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겠습니다. 아이들을 지혜롭게 보호하며 동행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서. 이러한 변화가 나로부터 시작되면, 삶으로
가르치고 삶을 변화시키는 교사라는 비전의 여정을 차근차근 밟아갈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럼 제
안에 가득했던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생각들은 비워지고 이미 충분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란 걸
기억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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